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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러시아 샹트페테르부르크대 명예박사 취득 특별강연


  존경하는 크로파체프(Nikolai Kropachev) 총장님,

 

  그리고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 교수님들과 러시아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의 젊은 학생 여러분!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영광스러운 러시아의 과거와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끌고 나가는 러시아의 현대를 모두 그대로 담고 있는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또한 러시아 사회의 주역이 될 여러분들과 같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의 동문이 된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길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표트르 대제가 1703년 건설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918년까지 러시아제국의 수도로서 에르미타주 미술관, 겨울 궁전, 이삭 성당 등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있어 도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ㆍ미술관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황제의 신분을 숨기고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후에, 러시아의 근대화를 위하여 유럽으로 향하는 창구로서 네바강 하구의 늪지대를 간척하여 건설한 이곳 도시의 유래와 나폴레옹 침입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았던 외세침입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1년 9월부터 약 900일간을 독일군에 포위되었던 역사 등을 되돌아보면,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아름다운 도시는 굶어죽으면서까지 이 도시를 지키려 하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영웅적인 시민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곳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문화와 예술은 한국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푸쉬킨의 시와 도스트예프스키의 소설로부터 삶의 진지함과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배웠고,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으로부터 고달픈 삶을 치유할 희망과 위안을 받았으며, ‘빈사의 백조’를 연기한 안나 파블로프로부터 꽃보다도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이 며칠 후인 11월 8일부터 한국에서 연주를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정통음악 애호가들이 이 공연을 기다리면서 수준 높은 러시아음악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이 도시와 이 도시의 사람들이 만든 모든 영광과 자부심의 중심에 상트 페테르부루크대학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이 대학은 렌쯔, 멘델레프, 파블로프 등 19세기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들을 배출하였고, 최근에는 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한 명실상부한 러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예술의 중심대학이라 할 것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과 같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학문적 전통과 문화적ㆍ정신적 유산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대학은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 것입니다.

 

  이와 같은 훌륭한 대학이 한국의 인천에 새로운 국제캠퍼스를 만드는 것을 크게 환영하는 바이며, 이를 통하여 그 자랑스러운 전통과 학문적 업적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발레리 조르킨 러시아 연방헌법재판소장의 초청으로 연방헌법재판소 창설 20주년 기념식 및 국제회의와 연방헌법재판소를 공식방문하기 위해 이곳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러시아 연방헌법재판소는 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새로 구성되는 시기에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통하여 헌법존중의 정신을 실현함으로써 체제전환의 과정을 성공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끌었으며, 설립 후 20년 동안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조르킨 소장님의 탁월한 지도와 재판소 구성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러시아 국민들의 인권 신장과 법치주의의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러시아와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미국 연방대법원이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등과 비교하여 그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구(舊) 체제에 대한 법적 청산작업을 완료하고, 명목적ㆍ장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헌법과 이를 수호하기 위한 헌법재판제도를 안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킴으로써 헌법과 헌법재판을 연구하는 전 세계의 전문가들로부터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양 재판소는 설립 초기부터 재판소장이 상호 방문하는 등 긴밀한 교류와 협력의 관계를 관례화하고 있는바, 특히 조르킨 소장님은 작년 11월에 있었던 북한의 갑작스러운 연평도 포격사건에도 불구하고 그 날 한국을 방문하시어 한반도 문제가 무력이 아닌 인도주의와 이성적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많은 한국 국민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저의 러시아 연방헌법재판소 및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 방문이 양국의 친선관계와 양 재판소 사이의 교류·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세계적 명문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헌법과 헌법재판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게 되어 매우 기쁘고 보람있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I. 헌법과 헌법재판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인간의 자유 및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에 의하여, 비로소 자유민주주의는 확고한 법적 기반을 가지게 되었으며, 사회적 약자도 존중되고 보호받는 민주적 동화와 통합의 국법질서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균형과 아울러 개인의 자유·평등·정의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입헌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의 이상은 우리 인류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규정한 헌법이 가지는 최고규범성은 국가작용이나 공권력에 의하여 자주 침해되거나 제한되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선각자들은 국민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헌법을, 실효적으로 지키기 위하여 헌법재판제도를 창안하였고, 이를 통하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헌법재판소는 국가·사회를 정치적 일원체로 동화적으로 통합하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선진화된 대다수 민주복지국가들은 정비되고 안정적인 헌법재판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바로 헌법재판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헌법재판제도와 관련하여, 저는 한국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창립되고, 어떻게 재판을 해왔으며, 한국 사회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해왔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II. 한국 헌법재판소가 지나온 길

 

  1987년 한국 국민들은 오랫동안의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등, 정의의 민주국가 건설을 열망하였고, 이러한 열망은 제9차 헌법개정을 통하여 오랜 세월 무시되었던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권력의 남용을 실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헌법재판소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 9월 헌법재판소가 창립되기 이전에도 헌법재판제도는 형식적으로 존재하였으나, 약 40여 년 동안 단지 4건의 법률규정에 대해서만 위헌결정이 선고되었을 정도로 사실상 유명무실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헌법의 최고규범성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라는 개념은 장식적·명목적 의미가 강하였고, 공권력에 대한 헌법적 통제도 소극적ㆍ제한적으로만 행사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헌법재판소가 창설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헌법재판기관과 마찬가지로 그 기능을 제대로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 창립 초기에는 구체제(舊體制)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도전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헌법재판소는 국법체계상 최고법이면서도 근본법인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분명히 하는 일방,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여야 할 국가의 책무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설득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헌법재판의 존재이유와 그 가치를 새롭게 제시하였으며, 그에 따라 법의 지배와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열망하고 있던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면서 중요한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과 영향력을 확립해 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창립 초기부터 헌법재판을 활성화하기 위해 헌법소원의 적법요건을 넓게 해석하고 법령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의 대상성을 긍정하여 적극적으로 심사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다음 해인 1989년에 접수된 사건은 425건에 불과하였으나 매년 증가하여 2010년에는 1,720건에 이르렀고, 지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약 21,000건이 넘는 각종 심판사건이 접수되어 약 20,000건을 처리하였으며, 그 중 약 650여 건에서 법령에 대하여 위헌을 선언하였고, 약 350건의 헌법소원사건에서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의 침해를 인용하는 결정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리고,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쟁의심판사건도 약 70여 건이 처리되었습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 이제 한국에서는 헌법은 법전 속의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국민들의 생활규범이 되었고, 모든 권력적 국가행위에 대한 통제기준이 되었으며,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이자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지키는 헌법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도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여 최근 수년간의 여론조사에서 헌법재판소는 신뢰도와 영향력에 있어서 제1위의 국가기관으로 계속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Ⅲ. 헌법소원의 새로운 유형으로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의 헌법소원

 

  한국에서 헌법재판제도가 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국민들로부터 기본권 보장의 최종적 수단으로 인식되게 된 제도적 요인의 하나로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특별한 유형의 헌법소원제도, 소위 ‘규범소원제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과정에서, 법치주의의 실질화와 기본권 보장의 강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에 따라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일부 유럽국가에서 헌법수호와 기본권 보장에 큰 역할을 하던 헌법재판소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음은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헌법개정작업의 참여자들은 서독의 본(Bonn) 기본법을 참고로 하여 헌법재판소제도를 도입하면서도, 국민들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침해된 헌법상의 기본권을 구제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절차인 헌법소원제도에 대하여는 개정헌법에서는 근거규정만을 두고 그 구체적 내용이나 절차는 전부 법률에 위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헌법소원제도의 구체적 내용이나 절차를 형성할 권한을 위임받은 입법자들은 독일식의 헌법소원제도를 모델로 하여 헌법소원의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를 정하는 과정에서 그 핵심적인 요소인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격론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내외 귀빈들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독일식의 헌법소원제도는 법률을 포함한 국가의 공권력 작용에 대하여 우선 일반법원의 권리구제절차를 모두 거치게 한 다음, 최후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최고법원의 재판, 즉, 상고심 재판을 대상으로 재판과정에서의 헌법이나 법률해석이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를 심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에서는 이미 법원이 거의 100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우수한 인적ㆍ물적 자원을 가지고 재판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생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다시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재판이 심사를 받게 된다는 점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또한 헌법의 편제 자체도 헌법재판소가 일반법원의 하나로 사법부에 소속되어 최고법원으로서 기능하는 독일(러시아)과는 달리, 일반사법권과 헌법재판권을 분리하여 헌법재판소가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헌법기관임을 강조한 결과 법원이 아닌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심판권을 행사하기에는 법리상으로도 다소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시 한국의 입법자들은 헌법소원제도의 구체적 내용과 절차를 만들면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에 의해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국민이 제기할 수 있는 일반적인 헌법소원제도(법 제68조 제1항)에 더하여, 일반법원의 재판에서 적용될 법률에 대하여 소송당사자가 법원에 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 기각된 경우 당사자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당해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특별한 형태의 헌법소원제도(제68조 제2항)를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헌법소원에서는, 구체적 사건의 당사자는 자신이 제기한 위헌제청신청이 법원에 의하여 기각된 경우에는 당사자는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위 제68조 제2항의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여 상고심의 판단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 하급심 절차에서도 바로 구체적 재판에 적용될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당사자가 위헌적인 법률을 적용한 법원의 재판으로 인하여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게 되는 것을 신속하게 방지하거나 구제하고 있습니다(재판이 확정되기 전에는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따라, 확정된 때에는 재심절차를 통해).

 

  이와 같은 규범통제형의 특별한 헌법소원제도를 운용한 결과, 최근 10여 년간 이와 같은 방식의 헌법소원사건이 전체 헌법소원사건의 약 4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들의 활용도가 높고, 위헌결정 등 청구를 인용하는 비율도 약 (7.2)%로 나타나 한국에서의 일반헌법소원사건의 인용율인 (3.8)%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특수한 유형의 헌법소원제도에 대하여 한국의 학계는 물론, 외국전문가들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제도로서 구체적 규범통제제도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신속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게 됨과 아울러, 헌법재판소를 새로 창설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일반법원과의 갈등관계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이 될 수 있어, 헌법재판의 활성화와 함께 헌법재판소의 안정적인 정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Ⅳ. 한국 헌법재판소가 정치·사회의 발전에 미친 영향

 

  지난 23년간 한국 헌법재판소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는 국민의 자유와 평등 등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함으로써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수호하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여 왔다는 점입니다.

 

  또한 과거 권위주의 체제 기간 동안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거나 집단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기도 하였던 법령들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의하여 무효로 선언되면서 이제 입법과정에 관여하는 국가기관들은 사전적인 헌법적 검토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들도 공권력 작용에 대한 헌법합치성의 심사는 바로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는 것임과 동시에 최고규범으로서의 헌법을 실효적으로 보호하는 길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결정으로는, 일정한 범죄로 처벌받는 경우 형벌과는 별도로 필요적으로 보호감호처분을 하도록 하는 사회보호법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 검사가 중형으로 구형한 경우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의 효력을 지속시키는 형사소송법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 미결수용자의 변호인접견에 교도관을 참여하도록 하는 행형법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제작 등을 형사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조항에 대하여 그 적용범위를 제한한 결정 등이 있습니다.

 

  한편, 권위주의 체제의 법적 유산에 대한 청산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되자 이제는 국가·사회의 안정과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거대 현안들이 헌법사건화 되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국가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현안들이 정치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대화·타협을 통하여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판단을 구하게 됨에 따라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국가의사 결정시스템이 왜곡되는 부작용, 즉, 정치적 형성권한을 포함한 권력분립의 원칙과 헌법재판의 한계 문제 등이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주요한 결정으로는, 수도이전을 위한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치에 대한 기각결정,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사건, 야간옥외시위금지사건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변론절차를 정비하고, 보편성과 설득력을 갖춘 심사기준을 연구·개발하여 심판함으로써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심판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게 되었고, 나아가 헌법재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근래에 들어서는 법률의 실체적 내용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입법절차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법률안에 대한 표결절차가 자유와 공정이 현저히 저해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는 국회의원의 법률안 표결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함으로써, 국회의 자율적 의사진행 보다는 법률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하였고, 이를 통하여 헌법재판소는 의회 내 민주주의의 실현과 정치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Ⅴ. 한국 헌법재판소가 나아갈 길

 

  사법심사(judicial review)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하여 그 기반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헌법재판제도를 모델로 하여 설립되고 재판실무가 운용되어 왔지만, 이제는 미국 연방대법원 등 영미법 국가의 판례이론들이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한국 헌법재판소는 세계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위헌심사의 기준과 방식 등을 개발하여 헌법재판에 있어서 ‘제3의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헌법은 일반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지만 그 나라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 가치관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서 헌법재판의 보편성과 지역적ㆍ국가적 특수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됩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아직은 독일, 미국 등의 이론을 수입하고 참조하여야 할 단계이지만, 앞으로는 이를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대정신과 역사발전의 방향에도 맞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즉, 독일, 미국 등 선진 헌법재판기관의 법리를 폭넓게 수용하는 한편, 이를 비판적으로 종합ㆍ지양하여 한국의 가치와 문화에 맞는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헌법재판제도와 헌법해석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한국 헌법재판소는 올해 산하 연구기관으로 헌법재판연구원을 설립하여 외국 헌법재판기관의 각종 판례와 법리 등을 수집·분석·연구하도록 하여 이 문제를 체계적·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Ⅵ. 헌법재판에 있어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과 한국 헌법재판소의 노력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안정적인 정착과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헌법재판소를 신뢰하여 준 대한민국 국민의 지지와 성원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더하여 성숙한 헌법재판의 전통을 이룩한 세계 각국 헌법재판기구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협력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 헌법재판소가 1988년 창립될 당시, 한국은 헌법재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부족을 먼저 같은 길을 지나간 선진 헌법재판기관의 지원과 협력을 받아 그것으로 메웠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발전되고 확립된 선진국들의 경험과 지혜는 새로이 발걸음을 옮기는 한국 헌법재판소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며, 이들 헌법재판기관의 조언과 지원은 헌법재판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헌법재판 선진국들의 도움과 협력에 의하여 성장하고 발전한 한국 헌법재판소는 이제 자신의 경험과 교훈, 지혜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하고자 열망하는 세계의 많은 헌법재판기관들과 서로 같이 공유하고 논의하기 위한 협력관계를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국 헌법재판소는 뜻을 같이 하는 아시아 헌법재판기관들의 전폭적 지지 아래 모든 준비작업을 마치고 내년 5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을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러시아를 비롯하여 터키, 인도네시아, 몽골, 필리핀, 태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의 헌법재판기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에서 러시아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헌법재판기관과 함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발전 그리고 인권보장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 헌법재판소는 아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의 헌법재판기관들과 헌법과 헌법재판의 발전방향에 관하여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9년 세계 각국의 헌법재판기관들은 이와 같은 논의를 위하여 100여 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세계헌법재판회의’를 출범시켰습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은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정확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올해 1월 브라질에서 있었던 제2차 세계헌법재판회의에서 2014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제3차 세계헌법재판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세계의 헌법재판기관들이 서로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고 우의와 협력을 다지는 중요한 회의의 차기개최국으로 선정된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회의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대열에 동참한 많은 국가들은 헌법재판을 통하여 인류의 이상인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과 노력은 우리 모두의 사명이자 축복이 될 것입니다.

 

Ⅶ. 맺는 말

 

  역사적으로 볼 때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남용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지난 20여 년간 모든 국가권력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통하여 헌법이 구체적인 규범력을 가지는 통제규범으로서 작동하도록 하였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국가권력의 기본권기속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장래에도 새로운 도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외 귀빈들 모두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는 민주정치의 확립과 인권보장의 향상으로 헌법재판제도의 도입배경이 되었던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위험성은 상당히 감소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본권의 관심대상이 자유권에서 사회권으로 옮겨가는 소위 ‘자유권의 사회권화’ 경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 자체도 상당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기관이 아닌 비정부기구(NGO) 등에 의한 각종 사회적 압력단체의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고,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에 있어서 새로운 많은 헌법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권의 국제화 현상’과 국제적인 인권보호기구의 설립 및 연대 등으로 인하여 개별국가에 있어서의 인권에 관한 헌법재판과 국가를 뛰어 넘는 국제적인 인권재판기관의 판결 사이에 그 효력의 우열과 범위 및 한계 등에 있어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의 헌법재판기관들은 국민의 기본권보장과 헌법질서의 수호를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각국의 경험과 지혜를 우리가 서로 함께 공유하게 된다면, 각국의 헌법재판 나아가 세계의 헌법재판은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고. 인류는 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만들어 주시고 장시간 저의 말씀을 들어 주신 존경하는 크로파체프 총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과 학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의  영원한 발전과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건승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2011년 10월 3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장   이 강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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